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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맺는 관계를 친밀도의 순으로 나열해 본다면, 부모-자식, 부부, 형제, 자매 등 가족 관계가 최우선으로 꼽힐 것이다. 그런데 이중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경우는 부부 밖에 없다. 그리고 부부라는 관계의 특이한 점은 다른 인간 관계와는 달리 관계의 시작과 끝이 최소한(?) 두 사람의 합의를 바탕으로 성립되며 결혼과 이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일종의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선택으로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시작한 부부라는 관계는 그들의 선택(일방 혹은 쌍방)에 의해 이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종결된다.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부부 관계는 다른 인간관계와는 달리 관계의 시작과 끝이 두 사람의 합의를 바탕으로 성립되며, 일종의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백년해로’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와 같은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이혼이라는 관계의 종결을 염두에 두고 결혼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에게 당신이 이혼할 확률을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거의 모든 경우에 우리는 그럴 일이 없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40여 년 간 혼인율은 약 30% 정도 감소한 데 비해 이혼율은 약 600% 정도 증가했으며, 단순 수치로도 2013년 약 32만 쌍이 결혼하고 약 11만 쌍이 이혼하였다고 한다. 통계 자료에 근거하여 결정한다면, 결혼과 이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변화해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 있게 본인들은 이혼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잔칫날 밥상에 재 뿌리는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겠지만, 동시에 그런 일은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본인만의 굳건한(?) 믿음도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결혼의 부정적인 측면을 미리 생각해 본 사람은 대처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을 가능성이 있고, 막상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도 슬기롭게 대처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결혼을 포함한 관계 형성의 과정에서 확률 계산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결혼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발생 가능한 다양한 상황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대처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을 가능성이 높고 막상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도 슬기롭게 대처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 갈등의 시작, 관계의 종결
대략 30여년 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의 방식을 바탕으로 살아 온 두 사람이 서로가 가진 많은 부분을 양보하며 맺는 관계가 결혼이다. 그 과정에서 양보가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사랑이라는 커다란 변명 거리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에 이르고 난 후,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양보했던 많은 부분을 더 이상 양보하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본인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즉, 내가 그 동안 많이 양보했으니 이제는 나를 위해 양보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초반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혹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평소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던 일들을 과감하게 하던 사람들이 결혼 생활이 이어짐에 따라 점점 이성을 찾아가기 시작하게 되며, 관계를 유지하며 본인이 감내했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을 기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갈등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는 일상생활을 공유하기 때문에 갈등은 불가피하다. 갈등으로 인한 다툼의 발생이 문제가 아니라, 해결 방식이 중요하다.
사랑과 호르몬 변화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이 사랑에 빠졌을 때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수준의 변화가 관찰된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높아진 반면 남성의 경우 낮아졌다. 이러한 호르몬 변화는 대뇌에서 감정적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동일한 참가자를 대상으로 2년 후 다시 호르몬 수준을 측정하였을 때, 그들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와 상관 없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결과를 결혼과 이혼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사랑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시기에 두 사람 간에 특별한 감정적인 연결 고리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작은 다툼이나 갈등에도 관계가 쉽게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부부는 일상생활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많은 부분을 공유해야 하며 이로 인한 갈등은 불가피하고 때로 다툼도 발생하게 된다. 갈등으로 인한 다툼의 발생이 문제가 아니라 해결 방식이 중요한 것이다. 싸우면서 관계가 더 단단해진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싸움의 과정을 보아야 한다. 단지 자신의 생각만을 쏟아내고 불만을 토로하는 싸움이라면,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 관계를 악화시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설령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주고 받은 말들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게 될 것이다. 즉, 예의를 갖춰 싸우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싸움이 진행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이 쌓이게 되면 결국 관계의 종결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상처 보듬기: 자기 자비(Self-compassion)
관계의 종결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하물며 부부 관계의 경우라면 그 정도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일 수도 있다. 심리적 상처를 겪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심코 ‘다 잘 될 거야’ 혹은 ‘시간이 약이다’라는 등의 말을 내뱉곤 한다. 과연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자연스레 아물게 되는 걸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18년간의 추적 조사를 통해 삶의 만족도를 측정해 본 결과, 삶의 만족도는 이혼한 시기에 저하되었다가 점차 회복되긴 하지만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상처를 보듬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연구에 의하면 상처를 보듬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 자비(self-compassion)를 제안한다. 자기 자비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용서, 완벽하지 않은 삶에 대한 인식, 정서적 평정심 등을 통합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자기 자비의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이혼으로 인한 감정적인 상처에 상대적으로 단단한 모습을 보였다. 쉽게 말하자면 결혼의 종결이라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고, 단순히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할 수 있는 어려운 시기 중의 하나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상처를 더 잘 보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비’의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이혼으로 인한 감정적인 상처에 상대적으로 단단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자기 자비를 통해 회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스스로를 추스르기에도 힘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엄청난 시선들을 감당해내야 한다. 심지어는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의 말조차도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혼한 사람들에 대해 이혼 사유와 상관 없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혼을 경험하며 받은 감정적인 상처를 겪어 내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사회적 지지를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회복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 자비의 개념에서처럼 삶은 완벽하지 않으며, 이는 우리가 맺는 여러 인간 관계에도 적용된다. 상처를 입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남녀 관계의 종착점이 결혼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혼을 예상하고 결혼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과한 것일 뿐,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글 : 김태훈 / 경남대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사와 석사, 미국 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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